체중감량효과로 1020서 유행
한해에만 2억정 넘게 처방돼
향정신성 성분으로 중독위험
불면증부터 심하면 환각증세
과다처방, SNS로 쉽게 구매
전문가 "오남용 방지책 필요"
고등학생 신 모양(16)은 1년째 식욕억제제의 일종인 '디에타민정'을 복용하고 있다. 평균 체중임에도 마른 몸을 동경한 나머지 약의 힘을 빌리고 있다. 체중 감량에 매번 실패하는 자신과 달리 식욕억제제로 10㎏을 감량한 친구를 보면서 약을 구매하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당시 신양은 공식적으로 약 처방을 받을 수 없는 나이였다. 결국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불법 구매해 복용하기 시작했다. 신양은 "처음엔 효과가 좋아 반 알만 먹어도 살이 쭉쭉 빠졌는데 약을 끊자 요요가 왔고, 약효가 떨어져 복용량을 늘리게 됐다"면서 "하루에 4~5알 먹은 날도 있다"고 털어놨다. 또 "처방받을 수 없어 SNS에서 비싼 값에 불법으로 구매하다 16세 생일이 지난 후부터는 병원에서 직접 처방받아 먹고 있다"고 했다.
마른 몸을 선호하는 10·20대 사이에서 체중 감량에 도움을 주는 식욕억제제 수요가 크게 늘고 있다. 식욕억제제에 포함된 향정신성 성분으로 쉽게 중독에 빠지고, 이로 인한 부작용도 속출하는 실정이다. 처방이 쉽다는 점을 틈타 미성년자에게 불법으로 판매하거나 마약 대신 이를 복용하는 경우도 있었다.
가장 널리 퍼진 '나비약'이라고 불리는 펜터민 성분의 디에타민정 외에도 국내에 합법적으로 유통되는 향정신성 식욕억제제 성분은 총 5가지다. 성분이 같아도 제조사마다 상품명이 달라 종류가 많다. 제조사들의 잇따른 상품 출시로 마약류 식욕억제제 소비도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식욕억제제가 향정신성 약이다 보니 중독으로 인한 부작용도 심각하다. 불면증·신경과민 등은 물론이고 심각한 경우 환각 증세까지 호소하는 사례도 있다. 이런데도 외모에 관심이 많은 10·20대의 수요가 증가하며 약물 오·남용 환자는 늘어나는 추세다. 국민건강보험에 따르면 약물 오·남용 진료 환자는 2019년 10대 1308명, 20대 2532명에서 2021년에는 각각 1678명, 3398명으로 급증했다.
16세 미만 청소년의 경우 약을 처방받을 수 없지만 SNS를 통한 불법 구매도 횡행하고 있다. 일부 판매자가 웃돈을 받고 식욕억제제를 '대리구매'해 판매하는 식이다. 실제로 지난 20일 서울 노원경찰서는 식욕억제제를 병원에서 처방받은 후 온라인상에서 되판 15명과 구매자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이들 중 3명은 10대였다.
식품의약품안전처(식약처)가 지난해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19년에는 환자 130만7193명이 2억5054만정의 마약류 식욕억제제를 처방받았다. 2020년에는 환자 132만4653명이 2억5370만6272정을, 2021년에는 128만2203명이 2억4495만2097정을 처방받은 것으로 집계됐다.
처방 환자와 처방 건수 모두 증가하다가 2021년에 소폭 감소했지만 한 번에 처방받는 식욕억제제 양은 늘어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방 1건당 평균 처방량은 2019년 40.0정에서 2020년 40.9정, 2021년 41.7정으로 매년 증가했다. 게다가 2021년에는 한 해 동안 9072정을 처방받은 환자도 있었다. 1회 처방마다 504알을 받아 1년간 매일 25알을 복용할 수 있는 양이다. 또 같은 기간 환자 3만3008명에게 무려 1170만3639정을 처방한 의료기관도 있었다. 매일 평균 3만2000여 정의 식욕억제제를 처방한 셈이다.
식약처는 의료용 마약류 식욕억제제 안전사용 기준에 근거해 1일 투여량을 최대 3알로 제한하고, 총처방 기간도 3개월을 넘지 않도록 규제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에서 병원을 운영하는 의사 A씨는 "식욕억제제를 찾는 수요가 많다 보니 많은 병원에서 처방해주고 있다"며 "병원쇼핑을 하며 처방받는 예도 있고, 무리한 걸 알고도 처방해주는 일부 의사들 때문에 문제가 더 심각해지는 것 같다"고 했다.
김현정 한국마약퇴치운동본부 팀장은 "미디어에 비치는 연예인들이 마르다 보니 이를 보고 따라 하려는 10·20대가 많이 늘어나고 있다"며 "마르지 않아도 괜찮다는 사회적인 인식 변화와 더불어 마약성 식욕억제제 위험성에 대한 교육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